[사례] 술만 마시면 밥달라고 찾아오는 C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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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C씨
홀애비에 알콜중독!! 어디서 또 한잔하셨는지 아직 낮 2시 즈음인데 벌써 만취,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다.
그리고는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면서 하는 이야기.

"남자가 혼자서 밥해묵기 처량한데, 밑에 (경로)식당에서 밥 좀 묵으모 안되겄나?"
"장애자는 밥주고 그라던데, 다리 콱 뿌사뿔까? 그라모 밥주나?"
"콤퓨타 뚜드리 보모 다 나온다 아이가? 거기 뚜드리 보소"


일관된 담당자의 답변!!

"아버님, 경로식당은 결식우려가 있는 저소득 가정의 60세 이상 지역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1급 장애인에 한해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로식당 운영규정에 나와 있는 사항입니다. 여기는 아무나 식사하실 수 있는 무료급식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이야기들..

"그런기 어디있어.. 서류갖고 와 보소"
"구청에 찾아갈까? 가서 물어보까?"


이쯤 되면 대화로는 해결이 안된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겠기에, 몇번이나 물었던 사실을 또한번 물어본다.

"아저씨,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등본이랑 수급자 증명서 떼 오시면 확인하고 대상이 되면 등록해 드린다니까요."
역시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저씨 이야기도 들어드리면서 보낸 시간이 한번에 한 두시간.
일단 자리에 앉히고, 물이라도 좀 드리면서 술 깨길 기다리는데, 하루종일 마신 술이 어디 잠시사이에 깨나?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는 이야기 들어주면서,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는게 할 수 있는 일의 다였다.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욕도 많이 먹고, 그러면서 하루에 최고 4시간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때로는 달래보고, 때로는 듣다듣다 못견뎌서 화를 내며 쫓아내어도 보고, 어느덧 한달즈음 지나서 또 찾아오면 그날인가 싶어서 마음도 다스려보고, 아니, 솔직히 그냥 쫓아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몇년을 지속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의 노하우는 있다.

'술에 취해 서비스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대처한다.

술에 취하면 이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대로된 대화나 상담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조건 자기 얘기만을 늘어놓기 일쑤이며,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뇌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이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해야할 다른 많은 일들이 있지 않은가?
이때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책이다.
다만, 그냥 밖으로 내보내려 하면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첫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이름과 집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이것은 얘기를 잘 안한다면, 대화 중간중간에라도 꼭 확인해야한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알아두어야 집으로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둘째, 할 이야기가 있기에 찾아왔으니 일단 자리에 앉히고, 물이나 차를 한잔 마시게 한 후 10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때 절대로 상대방의 이야기 중간에 토를 달거나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얘기가 길어지니 맞장구 치면서 그냥 끝까지 들어주어라. 다만 지킬 수 없는 섣부른 약속을 하게 되면 곤란하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여 다음날 몇시에 전화드릴 것을 약속하거나 맨정신에 다시 내방해줄 것을 약속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재차 서비스가 제공될 것을 확인한다고 해서 "그게 아니구요"라며 다시 설명하려 들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하고 일단 물러나라.

셋째, 대화시 주의할 점은 클라이언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거나,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 마라. 상당히 위협적이거나 거부적인 느낌을 주게 되어 클라이언트의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 폭력적인 클라이언트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넷째,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싶으면 더이상 들을 얘기가 없다. "네, 말씀하신 사항은 잘 알았습니다."라고 말한 후 "이제 저도 해야할 일이 있으니 이만하고 아버님은 댁으로 가시는게 좋겠습니다."라고 명확히 이야기하라.
대충 얼버무리는 것은 좋지 않다. 명확한 어조로 분명히 알아듣게 얘기한 후,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첫번째 단계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관차로 집으로 데려다 주거나 택시를 태워준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문밖에서 배웅한다.

다섯째, 안나가려고 버티는 경우는 냉정하게 말하며 쫓아내어라. 안나갈 이유가 없는데 버티는 경우는 명백히 업무방해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일 경우에는 이미 대화로 상대할 수준을 넘었으며, 술이 완전히 깨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태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복지시설에서 건물 밖으로 끌어내어라. 보통의 경우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못가누기 때문에 쉽게 끌려 나가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냥 112에 신고해서 집으로 귀가조치 시킨다. (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사 보호를 위해 진짜 CCTV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술의 기운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복지관의 문턱을 넘어올 용기가 없는 사람. 그래서 술을 마셨는데, 본래 해야할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만 하는 경우. 실제로 그런 클라이언트를 만난 경험이 있다.
100명의 주정뱅이 속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소심한 클라이언트 단 한명 때문에 우리는 쉽게 취객을 쫓아내지 못한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복지마인드다. 이럴 때를 위해 처음 복지시설을 술이 취해 찾아온 클라이언트라면 최소한의 연락처의 인적사항을 확보하여 다음에 꼭 한번 맨정신일 때 상담을 해보도록 하자.


(뒷이야기)~~~

나중에야 안 이야기지만, 그 C아저씨는 등본상으로도 60세가 넘었고, 실제 나이는 65세라고 한다. 게다가 독거노인.
진즉에 서류 챙겨오셨으면 무료급식 가능할 대상이건만..
술이 들어가 있으니, 당췌 기억을 못하고, 우째우째 서류 겨우 만들어서 해드리니 그제야 좋다고 얼굴에 미소가 돈다.

하지만 X버릇 남주나? 술만되면 여전히 찾아와서 온갖 불만을 털어놓고, 경로식당 담당자를 찾는 C아저씨..

 "동생, 사랑하는 동생, 종씨끼리는 다투는거 아이다. 나 간다"

응? 나는 J씨인데... 우짜다 C씨랑 종씨가 되었을꼬?
어떨 때는 니는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가, 어떨 때는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했다가..

오늘도 술 취한 이용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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