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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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할머니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으십니다.
왼쪽귀도 어두워 가까이 대고 크게 말씀을 드려야만 알아들으시지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복지관을 힘겹게 올라오셨습니다.

 

"사무실에서 뭐 나온거 있다고 했다하던데.."

 

밑도끝도없는 한마디에 사회복지사들이 분주해집니다.

 

사실 사회복지관 직원들이래봐야 10명 남짓이 고작이지만, 제공되는 서비스가 많고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다른 복지사의 대상자 현황까지 모두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남자가 전화했어요? 여자가 전화했어요?"
"몰라~"

 

혹시 다른 직원이 전화해서 서비스 제공을 약속드린건 아닌가 해서, 허겁지겁 전화를 돌리고 물어서 찾아보지만 우리 복지관에서 나가기로한 서비스 약속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때부터 할머니 주위로 사회복지사들이 모여서는 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를 시작합니다.

 

"혹시 관리사무소는 아니에요?"
"어? 이쪽은 안들려. 이쪽으로 얘기해~"
"관리사무소에서 전화한건 아니냐구요?"
"갔다 왔어. 거긴 아니라고 복지관 올라가 보래~"

 

관리사무소는 그냥 "아닙니다. 복지관 가보세요" 한마디로 우리에게 미루는 것으로 끝납니다.

 

"동사무소는 아닐까요?"
"몰라~"

 

계실 때 전화해서 확인하는게 필요할 듯하여, 부랴부랴 주민센터로 전화해서 H할머니께 연락드린 일이 있는지 수소문해 보지만 역시 거기도 아닙니다.

 

이쯤 되면 찾아주신 할머니도 슬슬 화가나시지 않을까요?
이리가면 저리가라하고, 저리가면 또 이리가라하고...
하지만 우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추측해 내기엔 너무나 정보가 적습니다.

 

물론 오늘 H할머니는
"아이고, 바쁜데 미안합니다."
하시며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제가 다 안타까워 엘리베이터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혹시라도 알게 되면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리가라 저리가라에 지치셔서 저희에게 화를 버럭 내는 분도 계십니다.

 

"사무실이면 여기 아냐? 왜 몰라!"
"관리사무소에서 여기라며!!"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복지관의 계단을 올라오셨는데, 역정을 내시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됩니다.

 

오늘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는 끝내 실패입니다.

 

하지만 H할머니의 사무실만이 아니지요.

 

"오늘 놀러간다매?"
"차 타로 이리 오라카던데"
"선물 준다꼬 받으러 오라던데 여(기) 아이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정확히 모른채 복지관을 찾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양가감정이 듭니다.
그래도 복지관이라고 찾아주신데 대한 감사한 마음과 찾는 곳이 여기가 아닐 때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
그리고 혹여나 복지관을 사칭하는 이상한 곳에 따라다니시다가 속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함.

 

"아닙니다." 한마디면 될텐데, 내 일도 아닌데 어르신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손발이 되어주는 사회복지사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노력이 분노와 역정으로 되돌아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복지사.

 

그들은 분명, 다음에는 꼭 "사무실"을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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