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복? 장복? 노복? 사회복지관을 재조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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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복? 장복? 노복? 초복, 중복, 말복도 아니고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복지관을 이르는 축약어이다. (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종합)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이 바로 본래의 표현이다. 이름따라 간다고 사회복지관은 무슨 남의 집 일하는 종도 아니고, 무조건 시키면 시키는대로 복종하라는 것도 아닌 것이, 정체성의 혼란부터 겪는 작금을 보면 애초에 이름을 잘 지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지관을 영어로 표현해보면, Social Welfare Center 또는 Community Center로 표기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회복지관의 사회는 지역사회 즉 Community를 지칭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복지관이 되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관은 종복이 아니라 지복또는 사복으로 불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사회복지사업법2조 제5호에서는 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일정한 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추고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복지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한다.’고 정의내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2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23조의23항 관련 [별표3]에 의거 사례관리, 서비스제공, 지역조직화라는 3대 기능으로 그 역할을 재정립하였다.

 

그런데 이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라는 표현으로 인해 일반 지역주민부터 사회복지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일부 기초자치단체 의원님들과 그들에게 사회복지관이 어떤 곳인지 전달해야하는 관계공무원들까지 정작 사회복지관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정작 문맥속의 지역이라는 단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이다. 노인복지, 장애인복지는 대상이 명확하기에 별다른 설명이 없다하더라도 쉽게 이해하는 반면, 지역복지를 이야기하면 어려워하고 모르겠다고만 한다.

 

이에 사회복지관에 대해 그 정체성과 역할을 풀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복지관은 지난 2,30년간 관 주도의 사회복지사업과 서비스를 전달하는 최일선의 전달체계로서 기능해 왔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각종 시범 사업들을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시험하고 보급해왔다.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지역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폭넓은 인프라와 지역주민과의 관계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지자체에서 지역복지협의체를 중심으로 수립하고 있는 많은 복지사업은 상당수가 그 전달체계의 끝에 사회복지관을 두고 있으며, 실제로 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각주:1] 부산시 전체 예산의 0.31%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복지관의 보조금 예산에 비해 그 역할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모르겠다고 하는지 오히려 의구심이 드는 바이다.

그리고 민관협력이라고 얘기하면서 함께 했던 많은 사업들과 회의들은 무엇이었으며, 때마다 요청하던 수많은 사회복지사업 실적 관련한 협조 자료들은 다 어디에 쓰였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면, 더 이상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전국 438(20137월 현재)의 사회복지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세계에 유래 없는 일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이런 사회복지관의 서비스 전달체계로서의 기능은 세계 유일한 모델로, 민관 협력의 우수한 성공사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 성과를 재조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독특한 한국형 지역사회복지모델로써 매우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손에 원석을 취고도 그 보석의 가치를 보지 못하니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둘째, 사회복지관은 변화하는 복지환경의 최일선에서 늘 지역주민과 함께해 왔다. 사회복지관은 그 지역주민을 위해 지역에 뿌리내리는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복지관이 하는 일이 다 거기서거기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러한 사업의 대부분은 앞서 얘기한 관과 연계하여 이루어지는 사업에 있어 전달체계의 한부분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본 탓이다. 전통적인 노인,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부모 가정,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 등으로 사회복지사업의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 왔으며,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 사회서비스의 확대에 이르기까지 사회복지관은 그 역할을 다해왔다. 이는 사회복지의 저변을 넓히는데 지대한 공이 있다할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같아보이는 사업도 사실 다 제각각의 목적과 개입방법을 달리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복지의 다양성과 전문성의 반증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관의 마을만들기의 역사는 짧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30년간 내려오는 서비스 전달체계의 기능만 하기도 급급했던 현실에서 주민조직화라는 것은 먼 이야기였다. 지역사회를 표방하는 사회복지관이 주민조직화를 미뤄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지역복지가 마을만들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사회복지관에 대한 인지도가 30% 수준이라고 한다. 즉 세명 중 한명은 사회복지관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실제 지역사회 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여러 망 들 중 하나의 지지체계 역할을 해오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보면 주민조직화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사회의 욕구와 요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거에 누가 마을만들기를 해 왔던가? 해야하는데 안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필요성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통적 커뮤니티가 살아있던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굳이 복지관이 나서 마을을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 그러던 것이 핵가족화,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이제야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지역사회복지관은 오히려 발빠르게 대응해 나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바른 해석이지 않을가?

어찌되었건 지금 사회복지관은 그 역할들을 누구보다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마을만들기가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지역사회복지관의 역할에 대한 인정과 사업수행의 역량을 인정해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셋째, 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사업의 산모 역할을 해왔다.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등의 단종 복지관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형태는 결국 지역사회복지관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매년 자원동원을 위해 프로포절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개발에 앞장섰으며 또 보급해 왔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언제나 지역주민의 욕구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처럼 사회복지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의 지역사회복지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다양해진 사회복지욕구와 국가 및 지자체의 사회복지계획에 따라 다양한 사회복지 관련 시설들이 늘어왔으며, 세분화된 기능 속에서 그 모든 기능을 수행해오던 사회복지관이 자리를 내어주다 보니 정작 사회복지관 자신의 포지셔닝이 애매해져 온 듯하다.
한편 하지만 
단종 복지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내의 접근성 문제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복지관이 그들의 역할까지도 상당수 여전히 함께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단종 복지관이 있다고 해서 결코 지역사회복지관의 역할이 줄거나 변화될 수 없으며, 여전히 많은 역할들을 사회복지관이 떠맡아가고 있다.

 

게다가 늘어난 여러 이용시설들 속에서 그들을 연계하고 조정하는 허브의 역할 또한 지역사회복지관이 맡아서 해 나가고 있다. 아직은 그 역할이 미비할지 모르나, 한국형 사회복지 서비스 전달체계 모형으로써의 사회복지관은 끊임없이 변모를 꾀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의 필수시설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어찌보면 한국의 사회복지역사와 함께 해온 사회복지관의 역사에서 사회복지관의 역할 지역성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넷째, 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해 1차적 안전망 기능을 수행해 왔다.

사회복지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지역사회 빈곤퇴치(탈빈곤, 탈수급)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그 결과는 미비하기 그지 없다. 이에 사회복지관은 도대체 무얼한 것이냐고 묻고는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되묻고 싶다. 그걸 왜 사회복지관 만의 책임으로 돌리는가?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지자체는? 지난 30년 동안 사회복지관에 바라던 기대와 역할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기능을 바꾸고 그걸 안했냐고 하는 것은 책임씌울 희생양 하나 찾듯이 사회복지관을 매도하는데, 바꾸어 생각해보자. 시의 복지정책 예산에서 사회복지관은 0.3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사회복지관에 묻는다는 것, 역으로 얘기하면 그만큼 사회복지관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빈곤문제는 인류가 경제적 관념을 가진 이후 여지껏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과제이다. 그리고 사회복지관이 지역사회의 빈곤문제에 개입하고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존재의 이유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사회복지관은 충분히 잘 수행해왔다고, 아니 너무나 잘 해왔다고 평가내리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역할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무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회복지관이 지역사회 내 저소득 노인, 장애인, 아동에게 매일같이 식사를 제공하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껜 도시락을 배달해드리고 있다. 사회복지관은 지역사회에서 1차적 안전망으로 의식주라는 기본 문제의 해결에 매진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선진국과 비교하여 열악하다 할만한 사회복지시설 인프라의 속에서 국민들의 1차원적 욕구는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진일보한 인식 속에서 권리로서의 복지의식은 더 많은 복지수요를 낳고 있으며 욕구를 넘어선 요구를 하고 있다. 이는 사회복지관이 여전히 상당부분 1차적 서비스의 전달에 매달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사회복지관이 제공하는 빈곤문제에 대한 1차적 안전망 기능을 결코 작다고 매도할 수 없으며, 2차 3차적 욕구 수준에 대한 대응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하여 그 수준이 낮다고 폄하할 수 없다.

 

다섯째, 지역내 기부문화를 조성하는 등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역사회복지관의 전체예산을 살펴보면 보조금 지급 대비 배 이상의 자원을 후원 등을 통해 동원하고 있으며, 그렇게 동원된 자원을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배제를 통해 기회가 박탈된 이들에게 주류 사회로의 복귀와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 자활에 성공하였느냐고 묻고는 한다. 사람이 특정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자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그는 노벨상이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분법적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편협한 사고이며, 사회복지는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복지의 넓은 분야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특히 사회복지관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기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다.

사회복지를 문제해결이라는 공식으로 보지말고 다르게 생각해보자. 갈등을 완화하고, 박탈된 기회를 부여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적 기술을 훈련하고, 지지체계가 되어주는 등의 역할도 사회복지관은 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통해 양극화된 사회를 해체위기로부터 막아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통합적 가치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상에서 지난 한국 사회복지와 사회복지관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사회복지관의 역할을 공공 서비스 전달체계로서의 기능, 사회복지영역의 확대 및 사회복지사업 및 프로그램의 개발·보급 기능, 주민 중심의 복지욕구를 수렴하고 반영하는 기능, 빈곤에 대한 1차적 안전망 기능, 자원개발을 통한 사회통합의 기능 등 다섯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각주:2]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사회복지관은 지난 2012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23조의23항 관련 [별표3]에 의거 사례관리, 서비스제공, 지역조직화라는 3대 기능으로 그 역할을 재정립하였다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 이는 사실 사회복지관은3년마다 이루어지는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 평가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있다. 대부분의 사회복지관은 성실히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 노동자에 불과한 지위와 권한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는 스스로 전문가라는 생각과 이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에 소명의식을 갖고 대응해 왔다.

특히 사회복지관 종사자는 그 의식과 책임감이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으며, 지난 30여년 간 한국 사회복지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 역할과 노력 그리고 성과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종복,노복,장복-사회복지관_v1.2.1.hwp

파란색 부분은 내용을 추가한 부분입니다. (update 2013. 09. 16)

 

 

아래는 부산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윤원찬 부관장님이 자작곡 및 부르신 노래입니다.


종복이라 부르지마세요.mp3

 

 

 

- 가사 -

종복이라 부르지마세요
종북이랑 헷갈리잖아요
종복이라 부르면싫어요
사복이라 불러주세요.

  1. 지역복지계획에서는 단 한줄도 사회복지관의 이런 역할을 밝히고 있지 않다. [본문으로]
  2. 개인적인 얕은 경험과 일천한 지식을 통해 살펴본 바, 이에 대해서는 사회복지관의 역사와 함께 해온 산 증인들의 더많은 지식과 경험이 덧대어져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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