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사회복지, 법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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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는 실천학문이다"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다녔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년을 건너,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학을 실천하면서 이 짧은 문장을 통해 느끼는 소회는 늘 새롭습니다.

"사회"복지이기에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의 전제가 중요하다고 믿었다가,
인권을 만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옹호는 사회적 합의라는 표현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다시 민주적 가치 속에서 다소 부족하고 더디더라도 한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직면하기도 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사회복지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실천방법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일관된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어느 하나의 가치를 중요시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딜레마를 만나곤 했습니다.

인권과 사회복지 그리고 법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때 배웠고, 지금도 잊지못하는 한 문장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짧은 표현입니다.
인권을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그리고 사회복지를 이러한 인권적 가치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보았을 때
사회복지는 법에 근간을 둬야할까요? 도덕에 근거를 두어야할까요?
나아가 인권과 사회복지의 한계는 이런 법적 근거에 한계를 갖는 개념일까요? 아니면 그 한계 너머를 지향하는 것일까요?

법과 제도로 들어갔을 때, 요즘 사회복지 현장이 부딪치는 한계 중 하나가 열거주의입니다. 
열거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요.
첫째, (작위의 열거) 법과 제도에 있는 것은 반드시 해라. 
하지만 이것이 법과 제도에 없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둘째, (금지의 열거) 법과 제도에 금지하는 것은 하지마라.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율적 판단(재량)에 의한다가 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법의 태생적 속성인 도덕의 최소한, 그리고 인권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위나 금지의 열거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열거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곧 사회복지가 인권을 지향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한계의 극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는 것과 다름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복지는 짧은 제도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태생이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전통적 영역의 한계에서 출발한 바 
기존의 개념을 보완하거나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념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이 바로 민주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어찌보면 법은 제한하고, 인권은 풀어주고, 민주주의는 통합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 인권, 민주주의. 
어쩌면 이 하나하나가 상호 보완하면서 상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놓여있고, 
사회복지는 그 시험무대 같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사회복지는 과거 선별주의에서 보편주의로 변모하고 있으며, 많은 시험대를 거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기본소득 등이 예가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권과 사회복지는 본래 한배에서 태어났으나, 
서로를 모른 채 다른 곳에서 자라 나중에서야 다시 만난 형제같다는 느낌입니다.
그 출발선이 같았고,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들.
사회복지가 보편적 복지라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가치적 근거를 인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사회복지는 인권과 달리 늘 한계에 봉착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한계이지 그 학문적 한계나 실천적 한계는 아닐 것입니다.

법과 제도라는 사회적 약속, 그 속에서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복지는 
민주주의라는 더디더라도 함께 나아가자는 가치 속에서 가장 조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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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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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하면 대표적으로 떠 오르는 것이 국민 주권, 그러다 보니 민의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 되고, 그 결과 다수결이라는 공리주의적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절차적 다수결과 인권이 상충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경우가 많다. 소수자 인권이 그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들이 그렇다. No Kids Zone에 대한 찬반 논리 또한 맥락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인권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일까?
조효제 교수님의 「인권의 문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계에 대해 8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교수님은 다수결과 사회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p.280-281 "자유 권리와 민주 권리를 합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자 필요조건이 된다. 즉, 비덤의 해석에 따르면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중략) 개인의 자유 권리에 해당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다수결의 심의대상이 되지 못한다. (중략)  소수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다수결이라는 것은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고, 반대로 자유 권리와 민주 권리가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내려진 다수결은 당연히 민주적 정당성의 무게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p.289 "우리가 여기서 경제적.사회적 '자선'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말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의무주체로서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 인권의 기본원칙이다(Henkin 1990, 45-48)."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9조에서도 밝히고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p.292 "민주주의가 경제적 인권의 충분조건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결론적으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며, 경제적·사회적 권리는 민주주의와 상호의존관계를 이룬다".

이를 해석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권은 가치개념으로 자유권은 이미 사회적 합의의 범주를 벗어나 있음은 자명하다. 한편 사회권 또한 국가적·법적 한계를 초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권이 자선이 아니라 권리임은 그에 따르는 의무에 대한 동의를 전제하는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가 사회권의 필요조건임을 말한다. 
즉 자유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며, 사회권은 민주주의와 상호의존관계를 이루며, 인권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요구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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