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ora Imp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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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ora Imparo(앙코라 임파로).

 

“Still I’m learning / 여전히 나는 배우고 있다로 번역되는 이 이탈리아어 문구는, 논어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와 더불어 배움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좋아하는 경구이다.

그런데 ‘Ancora Imparo’는 흔히 87세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한 말로 알려져 있으며, 이 글을 인용한 책에 따라 몇 가지 버전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아끼는 물건에 새겨져있던 글귀다라는 설이 그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놓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켈란젤로는 진정 지칠 줄 모르는 노력파였다. 한밤중에도 종종 일어나 일을 했다. 그가 아끼는 물건 중에는 손수레로 모래시계를 끌고 있는 노인의 조각상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미켈란젤로가 노년에 그렇게 말했다라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89세까지 평생 현역의 길을 걸었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에게 그 비결을 묻자,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켈란젤로가 한 말도, 조각상에 새겨져있던 글귀도 아니다. 심지어 의미도 다르다.

 

우선 조각상이 아닌 그림에 새겨진 이 글귀는, Giuntalodi의 작품으로 배움의 열망 또는 끊임없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의 무익함을 암시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어원을 찾고 또 확인하는 과정 또한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Ancora Imparo.

난 아직도 배우고 있다.

 

 

 

[출처] https://en.wikiquote.org/wiki/Michelangelo

 

Michelangelo - Wikiquote

Portrait of Michelangelo, by Daniele da Volterra.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March 6, 1475 – February 18, 1564), commonly known as Michelangelo, was an Italian sculptor, painter, architect, poet, and engineer of the High Renaissance who ex

en.wikiquote.org

[출처] Sylvie Deswarte-Rosa, 1988, "Domenico Giuntalodi, peintre de D. Martinho de Portugal à Rome", 
『Revue de l'Art』 80호: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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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사회복지, 법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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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는 실천학문이다"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다녔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년을 건너,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학을 실천하면서 이 짧은 문장을 통해 느끼는 소회는 늘 새롭습니다.

"사회"복지이기에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의 전제가 중요하다고 믿었다가,
인권을 만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옹호는 사회적 합의라는 표현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다시 민주적 가치 속에서 다소 부족하고 더디더라도 한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직면하기도 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사회복지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실천방법은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일관된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어느 하나의 가치를 중요시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딜레마를 만나곤 했습니다.

인권과 사회복지 그리고 법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때 배웠고, 지금도 잊지못하는 한 문장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짧은 표현입니다.
인권을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 그리고 사회복지를 이러한 인권적 가치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보았을 때
사회복지는 법에 근간을 둬야할까요? 도덕에 근거를 두어야할까요?
나아가 인권과 사회복지의 한계는 이런 법적 근거에 한계를 갖는 개념일까요? 아니면 그 한계 너머를 지향하는 것일까요?

법과 제도로 들어갔을 때, 요즘 사회복지 현장이 부딪치는 한계 중 하나가 열거주의입니다. 
열거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요.
첫째, (작위의 열거) 법과 제도에 있는 것은 반드시 해라. 
하지만 이것이 법과 제도에 없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둘째, (금지의 열거) 법과 제도에 금지하는 것은 하지마라.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율적 판단(재량)에 의한다가 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법의 태생적 속성인 도덕의 최소한, 그리고 인권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위나 금지의 열거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열거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곧 사회복지가 인권을 지향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한계의 극복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는 것과 다름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복지는 짧은 제도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태생이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전통적 영역의 한계에서 출발한 바 
기존의 개념을 보완하거나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념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이 바로 민주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어찌보면 법은 제한하고, 인권은 풀어주고, 민주주의는 통합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법, 인권, 민주주의. 
어쩌면 이 하나하나가 상호 보완하면서 상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놓여있고, 
사회복지는 그 시험무대 같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사회복지는 과거 선별주의에서 보편주의로 변모하고 있으며, 많은 시험대를 거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기본소득 등이 예가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권과 사회복지는 본래 한배에서 태어났으나, 
서로를 모른 채 다른 곳에서 자라 나중에서야 다시 만난 형제같다는 느낌입니다.
그 출발선이 같았고,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들.
사회복지가 보편적 복지라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가치적 근거를 인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사회복지는 인권과 달리 늘 한계에 봉착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한계이지 그 학문적 한계나 실천적 한계는 아닐 것입니다.

법과 제도라는 사회적 약속, 그 속에서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복지는 
민주주의라는 더디더라도 함께 나아가자는 가치 속에서 가장 조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 사회복지, 법 그리고 민주주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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