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상과 독백 2017. 9. 8. 16:53

부산 여중생 사건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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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 연일 뜨거운 이슈이다.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질 정도로 뜨거웠고, 소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으며,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중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점검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최초 청원되었던 것처럼 청소년 보호법은 이 사건과 관련성이 미미하다. 그래서 소년법 개정으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2. 소년법은 소년범죄에 있어 미성년자의 특수성, 장래 등을 고려하여 형량 부과시 보다 낮은 수준으로 처분토록 하고 있다. 

- 14세 이상 19세 미만 범죄소년에게는 사형 등에 해당하는 중범죄시에도 최대 형량이 15년이다.
-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소년인 경우는 ‘형사 미성년자’에 해당되며, 형사처분이 아닌 1~10호의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10호 처분: 만 12세 이상의 소년을 장기간(2년 이내)동안 소년원에 송치).


지금 우리가 아무리 흥분해 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을 보호해야할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부정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날로 잔혹해지고 심각해지는 소년범죄에 대해 어떠한 처분도 내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사회정의적 입장에서 분노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해당 범죄가 갖는 의도성 즉 처분받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버젓이 이를 자랑하고 또 반복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경악과 분노가 포함되어 있다. 또 하나는 피해자의 입장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처분받지 않는 불공정함과 오히려 피해자가 이사를 가거나 해야하는 불합리함은 공감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흥분해서 떠드는 문제제기는 매우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사회문제에 공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여러 사건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관점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는 잠시 덮어두고 일단 우리가 바라는 객관적이고 이상적인 형태가 어떤 것일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해자 소년은 적절하고 합리적인 처분을 받아 죄값을 치러야 하며,
가해자 소년은 진심어린 반성을 통해 잘못을 깨달아야한다.

피해자 소년은 이처럼 피해가 심각해지기 전에 우리사회가 발견할 수 있었어야 하며,
피해자 소년은 충분한 치료와 회복이 이루어져야한다.


첫째, 가해자 소년에 대한 적절하고 합리적 처분은 어느 정도이어야 할까? 현재의 처벌 시스템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모든 법이 우리 사회를 아우를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이 인간을 처벌하는 법이나 규제들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불의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의 처벌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처벌의 목적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충분히 반성하게 하고 또 교화하여 다시 우리 사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특히나 소년범죄에 대해 형을 감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와도 닿아있다. 그러나 현재의 교정시스템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마뜩한 대안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는 줄어드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우리의 경험과 사회학적 연구결과들이 얘기하고 있다. 위 두 가지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해본다.

우리가 소년법을 개정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처벌이 충분치 않고, 특히 보호처분으로는 개선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청소년에게 충분히 경각심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현재의 처분은 시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과업중심으로 바꿔보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무(無)인권 체험 100시간 같은 다양한 개선·체험 프로그램들을 개발, 피해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유사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또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봉사를 과업으로 달성하는 것, 피해당사자 또는 부모가 일원으로 참여하는 심의회에서 심의, 개선효과를 확인할 수 없다면 징계시간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방법, 기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기존 법령에 따른 범죄소년의 연령에 도달하는 경우 해당 법에 의한 심판을 받도록 하고 나아가 형법에 따른 처벌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법에서 형을 경감해주는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고, 유엔에서 권고하는 인권협약 등도 준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한편 우리가 놓치고 있는 바가 있으니 바로 문제의 원인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이다.

 “부산 여중생”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우리는 중학생 혹은 14살이라는 나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처벌을 받지 않을거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분노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연일 들었던 뉴스의 마지막 멘트는 이랬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과연 무슨 제도적 보완이 어떻게 필요하다는 얘기일까?  왜 우리는 피해자 소년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일까? 혹은 이런 문제를 미연에 예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답 없고 공허한 물음에 우리는 끊임없이 답을 갈구해야만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초기 은폐 축소하려했던 경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니다. 그들의 책임을 따짐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하나하나로써의 나는 무얼하고 있었나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가정은? 학교는? 우리 이웃은? 사회복지시설은? 동주민센터는? 구청은? 시청은?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폭력 등으로 사회봉사명령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여럿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갖는 공통적인 원인은 애정결핍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는 관심만으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았다. 우리 사회는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최근 여러 사건들을 통해 경험하였다. 정치가 그랬고, 고독사가 그렇다. 우리가 서로에게 무관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노력, 우리 사회전반에 메말라버린 마음의 여력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단순히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시키기엔 한계가 있고, 이런 경험을 모아서 대안들을 같이 찾아보자는 얘기다.


또한 피해자 소년과 그 가정이 도망치듯 이사를 간다거나 과도한 신상 노출로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린 또 어떤 일을 해야할까?

많은 이들이 피해자의 입장에 내 아이가 그렇게 폭행당했다면 이라는 상황을 설정해 감정이입했고, 그렇기에 더욱 우리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커졌다.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피해자라면? 혹은 내가 그 주변의 방관자라면?


이글을 정답이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내 안의 또다른 불편함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발생에 분노했고, 또 우리의 대응에 불편했고, 대안없는 사회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의 무지에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 조금 더 답답해하자. 그리고 이러한 것에 직면하자. 그래야 우리는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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